[DIWiTH 다양성 기고]
[다양성 기고] 성차의학과 다양성, 형평성, 포용성
김 나 영
서울대 의대, 분당서울대학교병원 내과 교수 / 분당서울대학교병원 성차의학연구소 소장 및 대한성차의과학회 회장
1. 서론
최근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다양성, 형평성, 포용성(Diversity, Equity and Inclusion, DEI)에 반대하는 행정명령에 사인하면서 이민 국가이자 그야말로 다양한 인종이 살아가는 미국은 급속도로 DEI가 후퇴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DEI가 기업 경영에 큰 도움이 되었던 마이크로소프트는 이에 개의치 않고 DEI를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밝혔지만, 사회 추세에 못 이겨 DEI를 소극적으로 진행하던 기업들은 슬그머니 이를 추진하지 않고 있어 매우 대조적 행보를 보이고 있다. 결국 기업마다의 DEI 유용성을 느끼느냐 아니면 비용만 드는 개념으로 받아들인 기업이냐의 차이를 보여주는 것 같다. 동일하지는 않지만, 남녀 다양성이 기업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ESG (environment, social and, governance 환경·사회·지배구조)가 있다. 한때 기업이 많은 관심을 보인 ESG가 관심을 끈 이유는 소비자의 50%가 여성이고 20, 30대 여성의 사회 참여가 높아졌기 때문이었다. CEO가 여성인 경우 기업 문화에 좋은 영향을 준다는 것, 그리고 이는 기업 생산성 향상으로 연결되었고 기업 리더 중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이 올라갈수록 기업이 주는 이미지 향상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결국 기업에서 여성 지도자 비율 증가를 생산성 향상이라는 전략의 일환으로 고려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기업이 ESG 경영, 투자를 해야 하는 이유는, ESG 요소를 고려하는 것이 기업의 지속 가능한 발전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리라. ESG 요소를 고려하는 것이 단기적으로는 회사 입장에서 비용이 될 수도 있지만(예를 들어 친환경 에너지로의 전환) 장기적으로 기업이 영속하는 데에 도움이 되고(예를 들어 이를 통해 기후변화가 완화되어 기업의 리스크가 낮아짐) 결국 주주에게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즉 단순히 "착한 일"을 하자고 ESG 경영을 하는 것이 아니라, ESG 경영을 하는 것이 회사의 장기적 이익, 주주의 장기적 이익에 도움이 되니 환경, 사회, 지배구조 요소를 고려하여야 한다는 논리이다. DEI에 대해서는 다양성이 포용성을 전제하지 않을 때 그 동력이 많이 사라진다는 것을 경험했다고 한다. 성차의학은 DEI 중 포용성, 형평성과 간접적으로 연계되기 때문에 DEI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고 남성중심적 의학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개념이라 생각된다. 또한 최근 정밀의학, 맞춤의학이 대두되면서 ‘성차의학 즉 성별 차이를 연구하는 의학(sex/gender-specific medicine)’은 이들의 기본 조건으로서 매우 중요하게 부상하고 있다. 1980년대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우리 사회는 모든 분야에서 남성 중심이었기 때문에 질환 대부분의 진단 및 치료도 남성 중심으로 이루어져 ‘170㎝-65㎏-남성’을 표준으로 약‧기구 등이 개발되었다. 그러나 남녀의 성차가 고려되지 않아 불행하고 비극적인 결과를 낳았던 사례들이 나오면서 의학계에서 이러한 편향을 지양해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게 되었다. 최근 발간된 캐롤라인 크리아도 페레스(Carlos Criado Perez)의 저서 “보이지 않는 여자들” 에서는 ‘편향된 데이터는 어떻게 세계의 절반을 지우는가‘ 라는 부제를 달고 공정한 데이터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현재까지도 의학 전문가들은 대사증후군의 기준이 남성에는 맞지만, 여성에게는 잘 맞지 않고, 근육감소증(sarcopenia)의 기준도 여성에게 맞지 않음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남성에서는 복부 비만증가에 비례하여 역류성 식도염(위산이 역류하여 식도 하부가 부식하는 질환)이 증가하지만, 여성에서는 그 상관관계가 없어 데이터의 절반을 버리고 남성 소견만 발표하는 경우도 있었다. 따라서 편향되지 않는 데이터로 객관적인 분석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남녀 모두의 건강 증진을 위한 ‘성차의학’은 실제 의료 행위를 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하다 하겠다.
2. 성차의학의 중요성
2005년도 세계적인 학술지, 네이처(Nature)에 게재된 논문에 의하면 여성과 남성의 유전적 차이는 놀랍게도 1%에 불과했다. 바꾸어 말하면 유전자의 99%는 같다는 뜻이다. ‘고작’ 1% 차이라는 말이 나오다가 그 직후 발표된 네이처 논문에서 침팬지와 인간의 유전적 차이가 1.2%라는 발표가 나오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성별 차이에 대한 관심이 중요한 이유는 같은 질병이라도 남녀 간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각각 원인 파악과 치료에 있어 다른 접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성차의학에서 남녀의 차이는 두 가지 측면에서 고려되어야 한다. 첫째는 호르몬이나 유전자, 염색체에 의해 차이가 나는 성(sex)적 측면이다. 둘째는 남녀로 태어나 사회, 문화적 역할의 차이에 의해 만들어지는 젠더(gender)적 측면이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질병의 발생이 남녀 간에 차이가 없을 것으로 생각하나 실제 질병은 이 두 가지 요소를 바탕으로 상호연관성을 가지며 발생하게 된다. 이러한 남자와 여자의 차이를 의학적으로 연구하는 것이 바로 성차의학이다.
사실 인체를 다루는 측면에서 볼 때 남녀 간의 신체적 차이에 주목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또한 실제 비슷한 질환도 많기 때문에 그리 호들갑을 떠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분들도 많다. 하지만 실제 의학이 다루는 대부분의 질환은 발병의 원인이나 치료에 있어 남녀 간에 차이를 두지 않고 진행해 왔음을 곧 알게 된다. 이것은 필자도 마찬가지여서 교육의 힘이 무섭고 관성의 법칙에서 자유로운 인간이 적다는 것을 일깨워 준다. 한데 최근 여러 남녀 차이에 대한 발견으로 질병의 발생이 남녀 간에 한쪽으로 치우치는 부분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어 다행이기도 하다.
3. 성차의학이 등장하게 된 이유
현대 의학의 발전 과정에서 남녀의 성차가 고려되지 않아 불행하고 비극적인 결과가 반복적으로 나오면서 의학계에서 이러한 편향을 지양해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게 되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1) 구토 억제제 탈리도마이드(Thalidomide)
가장 주목할 만한 약으로는 기적의 입덧 치료제로 불리던 탈리도마이드를 들 수 있다. 탈리도마이드는 1953년에 진정제로 처음 개발되어, 그뤼넨탈(Grünenthal) 제약회사의 콘테르간 (Contergan)이라는 제품명으로 1957년 판매가 시작된 이후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을 제대로 거치지 않았지만, 쥐와 토끼 등 각종 동물 실험에서 부작용이 거의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에 '부작용이 없는 기적의 약‘으로 선전되었고, 세계 약 50여 개국에서 의사의 처방 없이도 구입할 수 있는 진정제, 수면제로 판매되었다. 특히 입덧을 진정시키는 데 탁월한 효과가 있어 많은 임산부들이 사용하였다. 그러나 1960년부터 1961년 사이에 이 약을 복용한 임산부들이 기형아를 출산하면서 그 위험성이 드러나게 되었고, 1962년 판매가 완전히 중단되기 전까지 1만 명 이상의 기형아가 출생되었다. 이 약에 대한 연구를 진행한 결과 임신 42일 이전에 이 약을 복용하면 혈관 생성을 억제하는 부작용으로 인해 사지가 없거나, 있어도 매우 짧고 손가락과 발가락이 모두 소실된 기형아(그림 1)를 출산하게 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후 신약 개발 과정에서 인간, 특히 여성과 임산부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그림 1. 탈리도마이드 부작용으로 인한 기형아의 발가락
2) 소화관 운동 촉진제 프리펄시드(Prepulsid)
미국 회계감사원에서 지난 1997년부터 2001년까지 부작용으로 인해 시장에서 퇴출당한 10개의 의약품을 조사한 결과, 8개의 의약품이 남성보다 여성에서 더 높은 위험도를 나타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식욕억제제처럼 여성이 더 많이 복용하는 젠더 측면과 프리펄시드1)처럼 여성에서 더욱 치명적인 부작용을 유발하는 남녀의 신체적 차이가 원인인 경우도 있었다. 시사프라이드는 세로토닌 수용체에 작용해서 위장 운동을 촉진하는 약으로 1980년 처음 개발되어 역류성 식도염 등 위장 질환의 치료제로 아주 인기가 좋았던 약이다. 필자 또한 소화기내과 의사로 많이 처방했었다. 2000년에 폭식증으로 인한 위 불편감으로 이 약을 처방받아 복용했던 캐나다의 15세 여성 바네사 영(Vanessa Young)이 심장마비로 사망한 채 발견되어 큰 충격을 주었다. 시사프라이드가 특히 여성에서 치명적인 심장 부정맥을 유발할
수 있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면서, 제약회사는 자발적으로 판매를 중단하였다. 이는 심전도에서 Q와 T wave 간의 길이 즉 QT interval의 길이(그림 2)가 여성에서 남성보다는 긴 편인데 시사프라이드는 이 QT 기간을 더욱 길게 하여 특히 여성에서 치명적 부정맥과 심정지를 더 잘 유발하였다.
1) 상품명: 시사프라이드
그림 2 . 사람의 심전도
3) 수면제 졸피뎀(Zolpidem)
최근 문제가 된 약은 수면제 졸피뎀이다. 2011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린지 슈바이거트(Lindsey Schweigert)는 잠옷을 입은 채 경찰차 뒷좌석에서 깨어났는데 아무리 기억을 떠올려 보아도 왜 자신이 거기에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이후 수면제 졸피뎀으로 인한 부작용으로 몽유병과 같은 증상이 나타났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매우 황당해했다. 이처럼 미국에서만 700여 건의 졸피뎀과 연관된 교통사고가 보고되었고, 연구 결과 여성에서 남성보다 졸피뎀을 복용한 후 체내에서 대사되고 배출되는 속도가 느려서, 남성에 비해 높은 혈중 약물 농도가 유지되는 것이 확인되었다. 이후 미국 식품의약청이 각각 500명의 여성과 남성 실험자에게 졸피뎀 10mg을 복용시킨 후 혈중 농도를 조사한 결과, 여성은 15%, 남성은 3%만이 복용 8시간 후에도 주의력 장애를 보였다. 이에 미국 FDA에서는 2013년 졸피뎀을 복용하는 사람에 대해 복용 다음 날 운전 또는 집중력이 요구되는 작업을 피할 것을 권고하였으며, 특히 여성에서는 첫 처방 용량을 기존의 절반인 5mg으로 낮출 것을 권고하였다. 이 사건 역시 처음 약물을 개발하고 치료 용량을 결정하는 단계에서 남녀의 차이를 고려하지 못해 일어난 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왜 남녀에서의 약의 부작용은 다른 것일까? 이러한 남녀 차이는 기본적으로 생리적인 차이에서 기인한다. 졸피뎀과 같은 약은 지방에 잘 흡수되는데, 여성이 남성보다 체내 지방을 더 많이 가지고 있으므로 이러한 약은 여성의 몸에 더 오래 남아 있게 된다. 여성호르몬의 변화 역시 간을 통해 대사되는 약물에 변화를 줄 수 있으며, 신장의 크기 또한 여성이 더 작으므로 신장을 통해 배출되는 약물의 배출 속도가 느려지게 된다. 체중 및 표면적도 여성이 남성보다 작기 때문에 같은 용량의 약물도 더 큰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이러한 신체적인 차이뿐 아니라, 여성은 남성보다 만성적인 증상을 더 많이 호소하는 경향이 있으며, 따라서 더 많은 약을 먹고 있어, 이에 따라 약물 간의 상호작용에도 더욱 자주 노출되게 된다. 이에 약을 개발할 때나 기존 출시된 약의 사용에 있어서 성차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겠다.
4. 성차의학의 역사
약제 개발 등 임상 연구에서 성의 치우침에 대한 우려는 1980년대 후반부터 제기었고, 1987년 미국 국립보건원(National Institutes of Health, NIH)에서 임상 연구 대상자에 여성을 포함해야 한다는 원칙이 발표되었다. 이와 같은 미국 NIH의 정책은 1993년에 모든 인간 대상 연구에 여성과 소수인종을 포함하라는 법으로 발의되었다. 특히 3상 임상 연구에서는 치료 효과의 검증 과정에 여성과 소수인종에 대한 하위 분석이 가능할 만큼 충분한 수를 참여시키도록 권고하였고, 이에 필요한 비용 때문에 대상자를 제외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캐나다 보건연구소(Canadian Institutes of Health Research, CIHR)는 2010년부터, 유럽위원회(The European Commission)에서는 2014년부터, 그리고 미국NIH에서는 2015년부터 연구비 지원서에 성 혹은 젠더를 고려하고 있는지 명시하도록 하고, 연구 설계부터 분석 및 보고하는 과정에 이르기까지 성을 하나의 생물학적 요인으로(sex as a biologic variable) 반드시 사용하도록 규정한 바 있다. 우리나라가 100억을 투자하면서 2024년 아시아에서는 최초로 준회원국으로 가입한 유럽 최대 규모의 ‘호라이즌 유럽’에서는 연구계획서를 제출하는 필수 요소로 각 기관이나 대학에서 성평등 계획(Gender Equality Plan)을 요구하고 있어 성평등 계획은 연구비 수주를 위해 반드시 해야 하는 전제조건이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보건복지부 연구비나 한국연구재단 연구비에서는 여성이 총괄 연구자인 경우 가산점을 주고 성차의학과 관련된 연구인지 밝히는 밝히는 첨부 서류 형식을 포함하는 등 조심스러운 접근을 하는 듯하다. 이처럼 성차의학 발전에 있어 연구비 규정과 함께 또 하나의 주요한 방향은 논문이 발표되는 학회지의 규정이다. 2014년 주요 의‧생명 학회지의 편집장들이 모여 영향력 있는 저널에 실린 논문마저 후속 실험에서 재현이 안 되는 문제를 논의한 결과 실험 과정이나 보고 과정에서 성에 대한 고려를 충분히 하지 않은 것을 주요 요인으로 지적하였다. 이후 많은 저널에서 전임상 및 임상 연구의 성차 적용 여부를 논문 검토 시 고려하겠다는 것을 천명하면서 연구자들이 이 분야의 중요성에 더 관심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때까지 실제 발표된 논문을 보면 동물 실험의 경우 수컷, 암컷에 대한 언급도 없는 경우가 많고 대개는 남녀 각각에 대해 분석이 안 된 경우가 많다는 사실에 여러 편집자가 공감하고 나선 것이다. 실제 미국 세포주(cell line) 회사에서 사람 세포주의 성을 표시하는 경우는 50%, 생쥐와 흰쥐는 10% 미만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바 있다. 국제 동물실험의 연구결과보고 가이드라인인 ARRIVE (Animal Research: Reporting In Vivo Experiments)나 국제 의학저널 편집자협의회(International Committee of Medical Journal Editors) 권고사항 등에 성차 연관 내용이 포함되었고, 성별과 젠더 형평성 가이드라인, SAGER (Sex and Gender Equity in Research)과 같은 성차의학 전문 기준이 발표되기도 하였다. 국내에서도 2017년 11월 한국여성단체총연합회(여성과총) 주관의 "의‧생명 보건의료분야 국제학술지의 젠더 적용 사례" 를 통해 국내 의‧생명저널 편집장들에게 소개된 후 각 저널의 편집 정책에 성차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그림 3 . 성차의과학 주제 발간 서적
5. 국내 성차의학의 역사
우리나라에서도 2012년도 심장학회에 여성심장연구회가 만들어지면서 여성 심장질환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었는데 이때는 남녀 질환의 차이를 비교하는 ‘성차의학’이라는 단어가 별로 쓰이지 않았고 사회, 경제적 관점의 젠더의학이 좀 더 흔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저자는 2013년 여성과총 산하에 설립된 젠더혁신연구센터에 참여하면서 성차의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2016년 미래창조과학부 “젠더혁신을 통한 과학기술연구의 수월성 및 실용성 증진” 과제에 참여하면서 임상 연구를, 비슷한 시기인 2016년도에 한국연구재단에서 대장암의 성차를 연구하는 국책과제를 수주하면서 성차의학에 대한 임상과 기초에 걸친 균형 있는 연구를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연구의 결실은 2021년 ‘소화기질환에서의 성차의학’ 이라는 책 발간으로 이어졌고, 다시 2022년 과학, 기술, 의학 분야의 선도적인 학술 출판사인 스프링거에서 ‘Sex and Gender-Specific Medicine in the Gastroenterological Diseases’ 영문 책을 발간함으로써 세계를 놀라게 한 것 같다(그림 3). 2022년 12월, 젠더혁신센터 및 의학한림원에서의 ‘임상영역에서의 성차의학’의 발간은 성차의학 확산에 매우 큰 역할을 하였다. 이후 2024년 스프링거에서 다시 ‘Sex and Gender-Specific Medicine in the Clinical Areas’라는 두 번째 영문 책을 발간함으로써 일본을 비롯한 해외에서 큰 관심을 모았다. 2023년에는 성차과학과 성차약학 그리고 2025년에는 성차간호학이 발간되며 이러한 움직임은 과학계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그림 3).
그림 4 . 분당서울대병원 성차의학연구소가 개소 및 대한성차의과학회 창립
2023년 4월에는 분당서울대병원 성차의학연구소가 개소하였고, 2025년 1월에는 의학계를 넘어서 과학계 전체의 관심을 바탕으로 대한성차의과학회가 창립되면서 글로벌 네트워킹을 시도하고 있다(그림 4). 특히 한국과학기술젠더혁신센터의 이혜숙 소장님의 적극적 지지는 매우 큰 힘이 되어주고 있다. 또한 연구비 측면에서도 질병관리청 지영미 청장과 국립보건연구원 박현영 원장이 2024.5월부터 소화기 분야2)와 순환기 분야에 4년간 각각 37.5억 연구비를 마련하면서 성차의학 연구에 큰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이 연구의 가장 큰 목적은 치료에 중요한 가이드라인에서 남녀의 차이를 제시해달라는 것이다. 따라서 연구가 끝나는 2028년 12월에는 성차가 반영된 가이드라인이 여러 개 만들어질 것으로 보인다.
2) 성차기반 소화기계질환 진단·치료 기술 개선 및 임상 현장 적용
6. 결론
2016년에 오바마 전 대통령이 ‘정밀의료’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많은 지원을 약속하면서, 정밀 의료 개념이 일반인들에게도 많이 알려졌다. 정밀의료란 기존 치료법이 평균적인 환자를 대상으로 개발된 것에 반해 환자 개개인의 특성을 고려한 치료법을 연구, 적용하는 것이다. 이러한 정밀의료의 한 축으로써 성차의학이 연구 및 진료 부분에서의 적극적 확산이 필요한데, 최근 맞춤의학의 한 구성성분으로서 성차의학을 이해하는 학자, 의사, 학생들이 많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페미니즘과 같은 여성 운동이나 성소수자의 문제를 다루는 학문은 아니냐는 오해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ESG가 기업의 위상에, DEI가 인종, 문화 갈등의 해결사 역할을 한 것처럼 성차의학이 발전하게 된 이유는 결국 이러한 접근이 환자 치료에 더욱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의 성차의학에 대한 연구는 아직 초기 단계이나 성차의학연구소가 개설되고 대한성차의과학회가 창립된 만큼 향후 그 발걸음이 빨라지리라 예상된다. 이를 위해서는 국가에서 연구비를 적극 배정하여, 성차의과학에 대한 연구에 관심을 갖는 의학자들, 기초과학자들이 더욱 많아져야 하겠다. 또한 의료현장 실무자, 연구자, 학생들 사이에 끊임없는 성차의학의 적용 시도 및 가이드라인에 대한 합의가 이뤄질 때 본격적인 궤도에 오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